헌책방을 열고 닫는 일은 기본적으로 단조로움이 깃들어 있다. 문을 열자마자 문전성시를 이루는 장사가 아니다. 헌책방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하며 그러는 동안 시간을 지켜 문을 열고 닫는 일이며 가만히 앉아 자리를 지키는 동안 덮쳐오는 무력함을 이겨내야 한다. 때론 그 일은 시간관념이 아직 자리 잡지 않은 세 살 아이에게 시간을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벌써 아홉시야, 어서 양치하고 유치원 가야지. 라고 말 한 뒤 아이를 바라보면 태연한 아이의 표정에 맥이 빠져버리는 것처럼. 뭐라도 해야 해.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잖아. 라고 속으로 되뇌며 나를 재촉해본들 변하는 건 없다.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여지가 충분함으로. 무수히 쌓여있는 헌책들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상태로 내 곁에서 존재하다가도 어느 날 어느 틈에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 일이 이곳에서 만큼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김춘수의 존재론적인 시 <꽃>의 한 구절처럼,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이곳에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러한 발견이 이 책방을 운영하는 동안 운명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정작 그러한 발견은 대부분의 경우 연결에 의해서 이뤄진다. 기존에 접한 책 한 권이 다른 책과 연관되어 새로운 발견을 이끄는 것이다.
지금도 내 책상 양 옆으로는 수십 권의 헌책들이 정렬되지 않은 채로 쌓여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방에 있는 진열된 모든 책들의 이름은 헌책이다. 하지만 사실 헌책이란 말은 관념어에 가깝다. 그 말을 쓸수록 책과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책이 다 다르므로 헌책이라는 말로 지칭할 수 있는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1990년대 한국 시인들은 이러한 관념화된 언어를 언어의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대상을 포착하고 언어로 남긴 자신의 시 앞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좌절했다. 싱싱했던 순간들이 언어가 되는 순간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변해버리는지, 벗어나기 위해 언어에 언어를 덧씌울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 이승훈(1942-2018)시인은 자신의 시집에 해설마저 스스로 써버렸다. 자신의 시를 설명하는 일을 타인에게 맡기기보다 스스로 언어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수단으로 언어를 역이용한 것이다.
시인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러한 시도가 또다시 언어에 의해 붙잡힐 것임을. 그러나 그는 끝까지 밀고 나갔다. “문학은 끊임없이 불가능을 추구하는 일(김수영)”의 말처럼 불가능하다고 멈춰버리지 않았다. 나는 헌책을 다룰 때 그러한 문학정신을 끊임없이 상기한다. 헌책이라는 건 결국 이미 한 번 시대와 독자를 통과해온 물건이고, 그 안에서 내가 발견하는 어떤 흔적이나 감각은 대개 설명 불가능한 사적인 울림에 가까우니까. 그래서 ‘개별화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끝내 개별적인 의미를 찾으려 드는 태도 자체가 어쩌면 문학과 가장 닮아 있는 지점 아닐까 싶다. 김수영의 말처럼 불가능을 알면서도 계속 시도하는 일. 헌책을 다룬다는 건 단순히 오래된 책을 사고 파는 일이 아니라, 관념화되어버린 사라져가는 감각 하나를 끝내 언어와 물성 안에 붙잡아보려는 시도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게 발견한 책들은 대부분이 이미 내 곁을 떠났다. 나는 헌책연구가가 아닌 헌책방 운영자이므로 발견의 즐거움을 주었던 책들은 어느 책보다 먼저 판매했다. 견물생심이라고, 아까운 마음이 들면 생전에 천도복숭아밭을 운영하셨던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천도복숭아밭을 운영해도 나는 좋은 천도복숭아를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어릴 적에 수확 철이 되면 우리 가족들이 나눠먹던 쟁반에 수북이 담긴 천도복숭아는 늘 멍들고 기스난 B급 천도복숭아였는데 좋은 천도복숭아는 모두 팔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일수록 내 곁에 두기보다 먼저 팔았던 할아버지의 장삿속을 결국 나도 닮은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