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인구 국가비상사태’ 선언 … “스파르타 멸망 원인도 인구 감소”, 한겨레신문. 이승준 기자. 2024년 6월 20일 수정, 2026년 5월 31일 검색.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45558.html
장경섭. 2001. “가족이념의 우발적 다원성: 압축적 근대성과 한국가족” 『정신문화연구』 24(2): 161-202.
Edelman, Lee. 2004. No Future: Queer Theory and the Death Drive. Duke University Press.
“우리는 지금 위기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1
2024년 6월 20일, 윤석열 전 대통령2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했다. 인구 감소로 인한 고대 스파르타의 멸망을 선례로 들며,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역시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라고 암시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만 가장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초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위기다. 급기야는 대한민국의 존망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장인 대통령으로서, 윤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행정적 조치를 예고했다. 신설하기로 한 저출생대응기획부의 명칭을 인구전략기획부로 바꾸고, 해당 부처의 장관이 교육부장관을 대신해 사회부총리를 맡게 될 것. 나아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목표와 개선점을 내세웠다. 육아휴직 제도의 개선과 사용률 상승, 주거 안정 지원 정책 등이 바로 그것이다.3
한국에서 인구 문제를 둘러싼 ‘위기 서사’ (crisis narrative)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억제하는 것이 중차대한 국가 과제였다. 피임 기구 사용 장려, 동의 없는 피임 수술부터 ‘정상’ 가족 – 법적으로 혼인한 이성애 부부와 두 명의 자녀 –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적극적으로 국민의 섹슈얼리티와 가족을 규제하고 통제하며 인구 증가를 조절해왔다. 1980년대 초반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마침내 대체 출산율4 아래로 떨어졌다.5 이러한 인구학적 전환에 맞춰, 한국 정부에서는 2005년 ‘저출산고령화 기본법’을 제정하고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를 구성하며 2006년부터 시작되는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는 급격히 떨어진 출산율과 점차 고령화되는 인구 구조가 불러오는 사회경제적 여파를 파악하고, 국가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기 위함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잘못됐나?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현재에 대한 비판으로서 위기 서사
윤 전 대통령의 인구 국가비상사태 선언은 사태가 아주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비상! 비상!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해! 이러한 긴박감은 인구 위기를 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에 대한 긴급한 위협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위기 서사’가 현재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장치로써 작동하는 예이다.
위기 서사란 경제 인류학자 자넷 로이트먼 (Janet Roitman) 이 제안한 개념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셀렉 (Reinhart Koselleck)의 역사적 비판 개념을 따라가며, 로이트먼은 위기(crisis) 개념이 비판 (critique) 개념과 어원을 공유하고 역사와 그 역사에 대한 철학을 분리하는 독특한 시각을 만들어 냈다고 본다.6 다시 말해,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역사적 재현이 위기라는 개념에 의해 서로 구분, 분리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위기 개념은 소위 ‘위기 서사 (crisis narrative)’를 구성한다. 위기 서사란 중립적으로 기술되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위기 서사는 역사적 의미에서 미래와 과거를 문제적 현재로부터 분리해냄으로써 아주 독특한 역사관을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역사관은 문제적 현재 – 위기 – 를 인식하고, 다루고, 해결하고, 또 극복해야 한다는 도덕적 판단과 정치적 요구로 이어진다. 지금이 위기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에 대한 비판 (critique) 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임을 주장하는 것, 그러니까 위기 서사는 현재 상황에 대한 단순한 인식이 아니다. 이는 역사에 관한 지식을 만들어 내는 과정 그 자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지식 생산의 행위인 것이다.
두 가지의 인구 위기 서사
역사적 필연?
근대성 (modernity) 은 논쟁적인 개념이다. 한국이라는 맥락에 적용해보면, 근대성이라는 개념은 더욱 미묘해진다. 이는 한국이라는 국가-사회가 소위 서구화된 근대성 개념과 맺어 온 독특한 역사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한국 사회에서 근대화 (modernization)는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적 국면을 거쳐 일본이라는 타자를 참조해오면서도 또 언제나 ‘문명화된 서구’라는 관념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이해돼왔다. 단선적인 인간 사회 진화의 역사적 단계 위에서 문명화된 서구는 서구인의 현재이자 비서구인의 미래로서 인식되고 구성되어 온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화된다는 것은 종종 서구화된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져왔다.
한국의 인구 위기 서사는 이러한 근대성 개념과 본질적으로 관련돼 있다. 여기서 근대성은 인간 사회 진화가 도달한 인간 역사의 궁극적 단계일뿐 아니라, 탈/후기 식민지 시대의 국민국가로서 한국이 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도 깊게 연결돼 있다. 과거는 뒤떨어진 ‘전통’이며, 현재는 완전히 근대화된 미래 사회로 끊임없이 향하는 경계 상의 (liminal, in-between) 상태로 해석된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이러한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인구학적 지표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일본의 가족 사회학자 오치아이 에미코가 말한 일본 사회의 “근대성의 전통화 (traditionalization of modernity)”7라는 개념이나 사회학자 장경섭이 주창한 가족이념의 “우발적 다원성 (accidental pluralism)”8 등은 모두 탈/후기 식민지 시대 한국 및 일본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통(과거)과 근대성(미래)의 혼재가 인구와 가족이라는 구체적인 사례에서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 이해하려는 사회학적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단선적 진화로 이해되는 역사적 시간의 선상에서, 저출산 고령화로 표상되는 인구 위기는 모순적인 지표로 작동한다. 한편으로 인구 위기는 한국 사회가 아직 근대화를 완료하지 못했지만, 머잖아 이 목표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때 인구 위기는 한국 사회가 장밋빛 미래 – 완전한 근대화 –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장애물로 해석된다. 이 장애물이 신중하고 적절하게 다뤄져서 종국에는 극복되어야만 근대화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탈/후기 식민 국가가 지향하는 달성 목표로서 근대성은 한국의 인구 현상을 위기 개념을 통해 주조되고 있으며, 이 서사 속에서 저출산과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동시에 극복되어야 하는, 역사적 운명의 시그널로 나타나는 것이다.
긴박한 위기, 만성적 위기
5년마다 재수립되고 이어지는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통해 한국 정부는 인구 위기를 국가의 손으로 긴급하게 다루고 관리하는,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대하고 긴급한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쏟아져 나오는 정부의 정책적 조치들은 이 위기가 낳는 사회적 긴장을 실질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했다. 긴급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 위기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만성적인 사회 문제로 자리잡은 것이다. 인류학자 헨릭 비그 (Henrik Vigh)는 위기를 “수평선의 다른 한편에서 기다리는 끊임없는 가능성”이라고 진단한 바 있는데, 이때 위기는 눈 앞에 아른거리는 가능성이면서 동시에 서사를 통해 실현되고 경험되는 일종의 현실이기도 하다. 기본계획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또 동시에 끊임없이 인구 절벽의 미래를 암시하며 위기를 일어날 지도 모르는 가능성으로 전환한다.
다음의 가정 화법 시나리오들을 보자.
만약 국가가 현재의 위기에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가적 차원의 멸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만약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위기 서사는 마치 우리가 재앙 목전에 서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이 끔찍한 재앙이 당장의 적절한 조치 없이는 영원히 지속할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한국의 인구 위기 서사는 긴박한 동시에 만성적이다. 지금 당장 조치가 취해져야 하지만, 그 조치는 반드시 적절하고 올바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긴박하고 만성적인 위기라는 서사는 저출산과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경험을 설명하는 독특하면서도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사의 “모순적 영속성” (an oxymoronic permanence)9 속에서 위기 그 자체는 더 이상 탐구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위기는 탐구와 이론의 토대이자 바탕으로써 일상화되고,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특정한 인식을 만들어 낸다:우리는 지금 근대화의 과정 속에 있으며, 과거의 폭발적 인구 증가를 지나 지금 이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만이 우리가 가진 전부는 아니다.
재생산 미래주의를 넘어: 세 가지 비-위기 서사
위기 서사는 현재의 위기 상태에 대한 도덕적 판단, 그러한 위기 상태를 불러온 과거에 대한 비난, 그리고 현재에 대한 비판을 ‘무엇이 잘못됐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제시한다. 누가 위기를 불러왔다는 비난을 듣게 되고,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가? 적절한 대응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회는 이 사태를 불러온 원인, 또는 범인을 물색한다. 그것이 어떤 개인이든, 기성 세대이든, 어떤 정권이든 간에 말이다. 결과적으로 누가 책임을 지게 되든 간에,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킨다. 그 미래는 번영의 시대일 수도 있고, 완전한 멸종의 얼굴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특정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배제된다. “위기 개념 없이도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10 로이트먼이 물었듯, 우리는 위기라는 프레임 아래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가려진 이야기들을 조명하고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비-위기 서사 (noncrisis narratives)다.
비-위기 서사는 반(anti)서사도 아니고, 위기 자체를 해결하는 서사도 아니다. 비-위기 서사는 미래를 위기 서사와는 다른 방향과 관점에서 조명하며 인간이 만든 오류라거나 도덕적 실패가 낳은 위기라는 등의 비난과 판단을 동원하지 않는다. 로이트먼은 비-위기 서사를 통해 대안적이거나 또 다른 형태의 역사를 상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기를 경유하지 않고 구성되고 드러나는 비-위기 서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인식과 관점을 구성하여 위기 서사가 제공하지 못하거나 숨기려 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한국 사회의 소위 인구 문제와 관련하여 세 가지 비-위기 서사를 제시하고 싶다. 바로 비혼, 퀴어 친밀성, 그리고 비인간 존재와의 친밀성이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이미 인류학을 비롯한 여성학, 퀴어 연구, 사회학, 정치학 등 다양한 학문 분과의 관심 속에서 기록되고 분석되고 있다. 인구 위기 서사의 지배적인 담론 속에서 이성애 중심의 생물학적 재생산은 경제 발전과 발전주의의 사회경제적 패러다임 속에 자리한다. 그리고 이 패러다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재생산을 통한 건강한 노동력의 끊임없는 공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소위 ‘인구 절벽’이라는 담론(이는 또 다른 ‘위기 서사’다) 속에서는 새롭게 태어나 ‘정상’ 가정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바로 미래인 것이다. 이 안에 스며든 재생산 미래주의11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세 가지 현상을 인구 문제에 관한 비-위기 서사로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이 비-위기 서사들이 지배적인 위기 서사의 맹점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현상들이 열어 보여주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이러한 비-위기 서사들을 사회의 주변부에서 찾을 수 있는 낭만적 대안으로 그려내거나 근대화의 또 다른 지표이자 지향으로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비-위기 서사로서 비혼, 퀴어 친밀성, 그리고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는 지배적인 인구 위기 서사를 내파하고 우리의 인식 구조를 바꾸는, 지극한 현실로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에세이는 2024년 가을 학기 버지니아 대학 인류학과에서 열린 ‘Crisis and Anti-Crisis’ 수업의 기말 과제로 작성한 것을 줄여 수정한 것이다. 귀중한 피드백을 주신 캣 웨스턴 (Kath Weston) 교수와 한국 및 동아시아의 저출산고령화 현상에 대해 흥미롭고 새로운 시각을 나누어 준 수업의 동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