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과 박서영은 서로의 전시를 곁에서 지켜보고, 때로는 한 전시를 함께 만들어 온 친구이자 큐레이터 동료다. 두 사람에게는 각자, 그리고 함께 만든 전시가 있다.

박서영(이하 ‘박’): 전시를 하고 나면 항상 아쉬움과 반성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이미 끝난 전시에 말을 보태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러워요. 작가가 작품으로 말하듯, 큐레이터는 전시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말들이 지난 전시의 부연으로, 사족인 건 아닐까 걱정됩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제게 주어졌던 수많은 선택과 결정이 전시를 열면서 가능했던 것이기에, 그것들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전시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겠네요.
김민식(이하 ‘김’): 저는 오히려 말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전시는 남지만, 그 전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남지 않잖아요. 왜 그것이 남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전시가 ‘결과’가 아니라 ‘조건’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전시에는 사실 수많은 협의와 오해, 망설임과 타협,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결심들이 겹쳐 있죠. 그 전시가 서 있을 수 있었던 토양을 남기는 일. 그렇게 해야만 다음 전시에서 우리가 무엇을 반복하고,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할지도 보인다고 봐요.
박: 그렇게 말씀하시니 전시를 곱씹는 일이 변명이나 푸념이라기보다, 시차를 두고서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하나의 태도처럼 느껴집니다. 전시를 열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있잖아요. 그저 판단의 연속처럼 여겨졌던 선택들이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둘러싼 조건과 맥락을 서서히 꺼내 보이는 것 같아요.
김: 공동 기획을 《워싱턴야자》1를 통해 처음 경험했어요. 전시의 규모가 커질수록 협업은 필수적이죠. 38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였기에 ‘함께’는 불가피했습니다. 하지만 공동 기획은 단순한 분업과는 다르더군요. 한 사람이 의제를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조율하며 주제를 형성해 가는 일이었으니까요.
박: 공동 기획, 정말 쉽지 않죠. 저는 2022년 워크숍의 연쇄 형태로 진행했던 프로젝트 《관람차》2에서 처음 이런 방식을 경험했는데요. 역할과 업무는 세분되었지만,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혼자 기획할 때는 대부분의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그에 따른 책임도 온전히 감당하면 되잖아요. 그렇지만 공동 기획에서는 서로를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어요. 책임 역시 같이 지어야 했고요. 그 과정이 프로젝트를 더 단단하게 만들게 했지만, 동시에 망설임을 길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프로젝트를 워크숍이 이어지는 형태로 구성했던 것 같아요. 먼저 ‘기술 권력’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그것을 왜 워크숍의 형식으로 다루어야 하는지를 짚어보는 강연을 마련했습니다. 이후에는 그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자각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 기획자들 나름의 활동으로 풀어 나갔고요. 미술 작가, 음악가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기획자의 역할로 만나, 서로 다른 관점으로 같은 주제에 접근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과정 자체가 ‘따로 또 같이’의 상태를 실험해 보는 일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김: 그렇군요. 저는 《워싱턴야자》를 준비하는 동안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가’를 계속 고민했던 것 같아요. 다섯 명의 기획자가 함께 전시를 구성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떤 판단을 어디까지 밀어붙여도 되는지 스스로 가늠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개별 작품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 발견한 제 의견을 관철시키기보다는, 기획자들 간의 해석이 충돌하거나 맞물리는 지점을 살피는 쪽으로 관심이 옮겨갔던 것 같습니다.
박: 그래서인지 저는 《워싱턴야자》에서는 개입의 정도에 있어 한발 물러서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시각, 방향성만이 맞다고 주장할 수 없잖아요.
김: 저는 오히려 물러섰다기보다, 서로 다른 관점이 계속 얽히고 부딪히는 가운데 개입이 더 복잡하고 첨예해졌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업을 어떤 맥락 속에 놓을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어떤 관계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더 복합적이어진 것이죠.
다만 전시의 결과가 기획자들 간의 완전한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는 점을 은근슬쩍 폭로하고 싶네요. (웃음) ‘이식’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참여 작가들의 작업을 네 갈래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저희 사이의 관점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거든요.
박: 이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이식된 대상, 그것이 뿌리내리고자 하는 토착적 생태, 그리고 하이브리드한 정체성과 감각까지, 이렇게 ‘이식’의 층위를 네 가지로 나누어 보았어요. 하지만 이 분류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좌표에 가까웠습니다. 한 작가의 작업이 하나의 범주에만 머무는 일은 드물었고, 의미가 겹치고 교차하는 지점이 더 많았으니까요. 어쩌면 그 네 가지 구분은 작품을 정리하기 위한 틀이 아니라, 우리가 전시를 사유하기 위해 던진 질문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동은 어떤 조건에서 이루어지는가’, ‘이식은 무엇을 이동시키는가’, ‘원래 있던 것과의 관계는 어떻게 재편되는가’, ‘경계는 얼마나 임의적인가’.
결국 우리는 작품을 명확히 구획하기보다, 그 질문들이 충돌하고 교섭하는 쪽을 택했던 것 같아요. 완결된 체계를 지연하고, 서로 다른 관점이 공존할 수 있는 느슨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지요. 이를 미루어보아 《워싱턴야자》는 그 조율과 타협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김: 그리고 그 타협은 개념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전시장이라는 실제 공간에서 구현어야 했습니다. 작품들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무심히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작품과 작품 사이의 거리, 어느 작품이 특정 시점의 중심이 될지, 무엇을 그 옆에 둘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저는 직전에 기획했던 《파란 나라를 보았니》3에서처럼, 어떤 작품도 온전히 혼자 읽히지 않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어요.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작품들이 부딪히고 간섭하며 새로운 맥락을 생성하는 상태요. 그것이 ‘이식’이라는 주제가 지닌 혼종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워싱턴야자》의 개최지였던 갤러리 레미콘이라는 공간이 예상보다 넓어 쉽지는 않았지만, 네 개의 분류에 국한되지 않는 시각적 접점을 만들고자 했고, 그 시도는 어느 정도 구현되었다고 생각해요. 개념을 실체화하고 현실에 자리하게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이 기회에 다시 깨달았습니다.

박: 《워싱턴야자》의 출품작 디스플레이를 할 때 현장에서 작가님들이 의견을 많이 구해 주셨어요. 기획자의 시선을 신뢰하고 의지해 주신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었죠.
그런데 이런 순간들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작업 중에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면 막상 즐겁기보다는,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제 말이 작업의 방향을 과도하게 이끌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계속 묻게 되더라고요. 작가님과 ‘다음’을 ‘함께’ 도모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제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이 되어서요. 더 말할 수 있을수록 오히려 더 말을 고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건네는 말 한마디가 작업 안으로 스며들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전시가 기획자와 작가(들)의 이인삼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마주한 지금이 작가님(들)께는 찰나임을 잊지 않으려 해요. 당장의 설득력을 갖추기보다도, 시간이 지나도 버틸 수 있는 말을 찾으려고 늘 경계합니다.

김: 말씀을 들으니 고우정 작가님의 개인전 《사랑한 것은 나의 그림자》4가 떠오르네요. 그 전시는 준비했다기보다, 작가님과 어떤 시간을 함께 건넜다고 느껴요. 거의 매일 통화했고, 작업의 방향을 함께 고민했죠.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면서, 전시는 점점 하나의 구조를 갖추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박: 전시 이후에도 작가님과 각별한 관계를 이어오고 계시잖아요. 단번에 다져진 우정이 아니었군요.
김: 당시 작가님은 새로운 작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었어요. 형상을 만드는 대신, 껍질과 파편을 남기는 방식으로 작업 방향을 바꾸고 있었죠. 몸을 흙으로 직접 떠낸 얇은 표피를 보며, 저는 그것을 ‘작가로부터 떨어져 나왔지만 여전히 흔적을 품고 있는 감정의 껍질’로 읽었습니다. 그 해석을 조심스럽게 건넸을 때, 작가님 역시 기존의 모양새에서 벗어난 그 작업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해요.
전시는 그때부터 조금씩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유약의 흐름을 감정의 잔여로 읽는 관점, 서로 다른 좌대들이 만들어내는 시간성의 중첩, 조각과 받침의 경계를 흐리는 장면들. 이런 요소들이 단순한 설치 방식이 아니라, 감정이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는 하나의 주제로 엮이기 시작했죠.

박: 고우정 작가님의 이전 작업을 알고 있던 저에게도 그때 선보인 작품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자소상이나 기(器) 형태의 작품에서 보였던 표면과 밀도가 완전히 달라졌더라고요. 형태는 불완전해졌는데, 되려 작가님이 담고자 했던 감정은 더 오롯이 와닿는 느낌이었어요. 갈라지고 터진 살갗과 일그러진 덩어리에서 감정이 스며 나오는 듯했어요.
김: 그 경험을 통해 저는 작가와의 상호작용이 전시에 미치는 영향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작품은 분명 작가가 만듭니다. 그러나 전시는 해석과 질문이 오가며 형성되는 하나의 사고 환경에 더 가깝다고 여겨졌어요. 제가 던진 한 문장은 작가의 생각을 흔들고, 그 흔들림은 작업에 스며듭니다. 그렇게 남는 것은 설명이나 해석이 아니라, 함께 통과한 시간의 응집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 그렇다면 우리가 남긴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작품을 바꿨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기도 어려운 상태. 어쩌면 우리가 하나의 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가 잠시 멈춰 서도록 만드는 방지턱, 혹은 보이지 않는 공기 같은 것. 특정한 환경 같은 것이요.
김: 동의해요. 저는 전시가 끝난 뒤에도 그 대화가 이어질 때, 그제야 무언가가 남는다고 느껴요. 작품은 전시장에 잠깐 머물지만, 대화는 작가에게 남아 다음 작업으로 흘러가기도 하니까요. 전시가 문을 닫아도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박: 그런 점에서 지금의 대화는 우리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더듬어 보는 일 같아요. 전시의 안팎, 어떤 위치에 있었고, 어떤 말을 건넸는지를요.
김: 그 표현, 마음에 들어요. 전시를 ‘만든’ 게 아니라, ‘그 시간에 함께 서 있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박: 그리고 그 자리는 전시마다 달랐겠죠. 어떤 전시에서는 더 가까이, 어떤 전시에서는 한 발짝 물러선 채로요.
김: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필요하고 또 귀한 일인 것 같습니다.
박: 전시 이후에 다시 말을 보태는 이유를 그때, 그리고 그때 나눴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멋지게 포장해 말하고 싶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