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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
어느 (예비)학예노동자의 편지 : 흰개미 되기
최연준
에세이
... 한국

1960년대 말, 뉴욕 미술인들 사이에서 ‘미술노동자’의 편지가 돌았다. 편지에는 ‘우리는 이 혁명을 지지해야 한다.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변화의 초석을 닦아야 한다. 이 행동은 미술이 자본주의로부터 완전히 결별함을 뜻한다’라고 적혀있었다.1 당시 미국의 미술인과 비평가들은 스스로 미술노동자라 일컬으며 ‘미술노동’을 재정의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얽힘과 해결할 수 없는, 해결되지 못하는 일이 뭉텅이처럼 붙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노동을 노동으로 바라보았기에 굴러갈 수 있었다. 나는 스스로 ‘예비학예노동자’라고 소개하며, 당신에게 예비학예노동에 대한 재정의를 함께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예비학예노동은 학예노동의 시작점에서 이뤄지는 노동이다. 그러나 학예노동의 전반이 ‘예비’라 불리는 인력으로 굴러간다. 다수의 학예인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기관연수단원’, 한국박물관협회 및 한국사립미술관협회의 ‘전문인력 및 예비학예인력’, 서울특별시의 ‘매력일자리(구 뉴딜일자리)’ 등 보조금 사업의 일환으로 고용된다. 고용 과정에서는 낮은 임금과 짧은 계약기간이라는 불안정함을 겪는다. 고용된 후에는 학예노동자와 다름없는 업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학예노동자가 되기 위한 ‘연습’으로 치부된다.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미련 없이 대체된다. 어느 예비학예노동자가 미끄러지면 또 다른 예비학예노동자가 대체되는 구조, 말하자면 쉽게 미끄러지는 구조인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는 애정을 볼모 삼아 노동자를 소진 시키고 계속해서 떠돌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를 비판하기 어려운 것은 이로 인해 학예노동 밖으로 튕겨 나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학예노동자는 면접 과정에서 노조 활동에 관한 질문을 받았고 학예사 권익에 관심 있다고 답하자 불합격을 받았다고 한다.2 이러한 사례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을 뿐 수없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쉽사리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은 이 문제제기가 노동 환경 개선이 아닌 업계를 떠나야 하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 환경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에는 서울특별시의 뉴딜일자리로 처음 학예노동에 들어섰다. 내가 일하는 부서는 정규직 4명, 계약직 2명, 그리고 뉴딜일자리 18명으로 구성되었다. 문화예술을 만드는 이의 다수가 최대 1년 6개월 근무하는 뉴딜일자리라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 종속되어 갔다. 예비학예노동 구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다고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때로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창피했다. 종종 예술 밖의 사람들에게서 그곳은 왜 그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원래 그렇다’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한 편으로는 이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다고 판단되지 않았고, 또 한 편으로는 ‘나는 전시공간을 사랑하는데 전시공간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예비학예노동을 하면서 애정의 이면을 확인했으면서도 애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장난처럼 이건 업보라고 말했지만, 이 애정이 나를 형성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시공간은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전시공간을 사랑했다. 그걸 인정하니 예비학예노동이 가진 이상함을 입 밖으로 소리 내 발화하고 싶었다.

예비학예노동의 이상함을 발화하는 방법으로 ‘흰개미 되기’를 실천하고자 한다. 1962년 비평가 마니 파버는 에세이 「흰 코끼리 예술 vs 흰개미 예술」을 통해 ‘걸작’이라 일컫는 예술이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무력해졌다고 여겼다. 그는 캔버스라는 틀 안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흰 코끼리 예술’, 스스로 경계를 갉아 먹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흰개미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두 가지 의미 모두 예술 분과 안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예비학예노동 구조 앞에서 우리는 흰개미 예술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흰개미 예술을 지향한다는 건, ‘요점이나 목표 없이 작은 구역에 곤충처럼 몰두하는 것, 항상 어떤 한순간을 파고드는 일에 집중하면서도 미화하지는 않는 것, 그러나 지나쳐 나아가자마자 자신의 그런 성취에 대해 잊어버리는 것, 모든 것은 소모품이며, 잘게 쪼개 새로운 배치로 패대기치면서도 망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감각’을 의미한다.3 이를 기반으로 흰개미가 되는 건 구조가 만들어 놓은 이상함에 종속되지 않고, 파헤치며 갉아 먹음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예비’라는 이름에 머뭇거리기보다는 자신의 노동을 스스로 정의 내릴 필요가 있다. 이 정의의 시작은 애정을 미화하지 않음에서 시작한다. 애정을 미화하는 것은 애정을 지키는 방법이 아니다. ‘전시공간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걸 인정함으로써 애정의 이면에 놓인 문제를 인식하는 것. 이 과정에서 스스로 소모품처럼 여기지 않고, 다른 이가 겪고 있는 예비학예노동을 이해하며, 학예노동 구조의 밖으로 튕겨 나갈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각자가 이룬 하나의 정의는 앞으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된다. 비록 나는 당신의 예비학예노동을 알지 못하고, 당신도 나의 예비학예노동을 알 수 없다. 그러나 흐릿하지만 서로의 예비학예노동이 굴러가고 있기에 각자의 정의가 함께 뭉쳐질 수 있다.

전시 《바질페스토 (노동) 샌드위치》는 ‘예비학예노동자’ 이름 아래 쌓아온 감각과 질문을 드러내고자 ‘전시공간에서 함께 발화하기’를 시도한다. (2026년 4월 17일 - 5월 23일 @문화살롱 5120)
전시 《바질페스토 (노동) 샌드위치》는 ‘예비학예노동자’ 이름 아래 쌓아온 감각과 질문을 드러내고자 ‘전시공간에서 함께 발화하기’를 시도한다. (2026년 4월 17일 - 5월 23일 @문화살롱 5120)

한때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며 기만한 적이 있다. 그 시기가 지나면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배웠다. 나는 당신이 애정하는 것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면서 애정하는 공간에 머물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이 편지를 통해 자신의 자리에서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변화의 초석을 함께 닦기를 제안하고자 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