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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
땅을 신뢰하기
곽수아
에세이
... DMZ 한국

두 한국(북한, 남한) 사이의 비무장지대(DMZ)는 세계에서 가장 삼엄하게 요새화된 국경 지대 중 하나다. 2018년 4월,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에서 만났고, 이는 전례 없는 순간으로 널리 평가받았다. 기자들은 두 지도자의 사적인 대화를 멀리서도 포착하기 위해 최첨단 마이크를 들고 국경 남쪽 가장자리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장비가 녹음한 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라 길게 이어지는 새들의 지저귐이었다. 토종 새의 울음소리는 수십 년간의 군사화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덕분에 국경지대에서 비인간 생명이 살아남았고 오히려 번성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외교적 제스처와 생태적 스펙타클이 펼쳐지는 풍경 아래, 널리 추정되었음에도 한 번도 확실히 확인된 적 없는 현실이 묻혀 있다. 바로 약 백만 개의 지뢰가 DMZ 아래에 여전히 매설되어있다는 것. 본 글은 다르시 디안젤로(Darcie DeAngelo, 2024)의 저서 『쥐를 사랑하는 법(How to Love a Rat)』을 참고하여 이를 한국의 맥락에 적용함으로써, 평화가 유예되고 폭력이 잠재하는 풍경 속에서 신뢰가 어떻게 협상되는지 고찰한다.

도보 다리 회담의 숨은 조연...새소리 주인공은? / YTN [32초부터 시작

땅을 신뢰하기

디안젤로의 민족지적 연구는 수십년 간에 걸친 내전과 지역의 무력 분쟁의 물질적 유산인 캄보디안 지뢰밭을 다룬다. 그는 평화가 선포된 후에도 무분별하게 매설된 지뢰가 어떻게 일상적인 이동을 제한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쓰듯이, “지뢰는 당신이 건드리지 않을 때에도, 당신을 이리저리 밀어내고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 당신을 건드린다” (DeAngelo 2024: 63). 땅에 묻혀 습기, 온도, 침식, 시간과 얽혀있는 지뢰는 직접적인 작동 없이도 힘을 행사한다. 그래서 지뢰의 잠재적인 힘은 그 의미 자체 뿐만 아니라 몸, 행동, 삶, 죽음을 규율하는 끈질긴 폭발 가능성에도 있다.
바로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신뢰는 불가피한 것이 된다. 신뢰는 흔히 도덕적 혹은 정치적 이상으로 거론되며, 갈등 이후에 회복되거나 조약으로써 확보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잠재적 폭력이 도사리고 있는 전후 환경에서 신뢰는 확실성이 확보될 때까지 미뤄질 수 없다. 한국은 이 조건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비록 한국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전되지 않았지만 일상적 삶은 전쟁이 끝난 것처럼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뢰한다는 것은 위험이 없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세계가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주할 수 있는듯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뢰는 전쟁의 유산이라기보다 스톨러(Stoler 2008)가 말하는 “제국의 잔해(imperial debris)”다. 이것은 폭력은 완전히 가시화되지도, 완전히 종결되지도 않았지만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삶에 내재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DMZ는 평화에 대한 약속이 해결이 아닌 유예의 약속어음처럼 작동하는 지층이다(193). 그래서 신뢰는 단지 심리적이거나 정치적인 성향이 아니다. 신뢰는 땅이 할 수 있는 것에 의해 형성되는, 물질적으로 매개된 관계이다.

평화를 신뢰하기

캄보디아의 지뢰지대는 “목가적 아름다움((DeAngelo 2024: 19)” 아래—나무 아래, 연못 옆에—에 폭력을 숨기고 있다. 이는 병사들이 쉬고 싶어 할 만한 안심되는 장소에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엔젤로는 지뢰가 “평화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들”에 설치되었으며, 이 평화로움은 “신뢰할 수 없는 감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방식으로 지뢰는 사람들이 안전의 기준으로 삼는 감각적 단서를 교란함으로써 정동적 신뢰를 약화시킨다.
지뢰가 현재에 폭발할 때, 그것은 과거의 평화로웠던 순간을 회고적으로 재평가하도록 강제한다. 2021년에 남한의 민간인이 북한의 지뢰로 부상을 입었을 때, 그 폭발은 과거로 뻗어가 2018년 평화 정상회담의 의미를 시간을 거슬러 뒤흔들었다. 디엔젤로는 “자신이 걷는 땅을 믿을 수 없다면, 과거 또한 믿을 수 없다.” (2014: 21)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평화는 가역적이고 우발적이며 불확실한 무언가가 된다. 다시 말해, 물질적 외연(폭발)이 평화를 향한 상징적인 제스처를 끊임없이 반박하는 세계에서 신뢰는 재조정되어야만 한다.

적국을 신뢰하기

헤니그(Henig 2012)의 지뢰가 매설된 보스니아 경관을 다룬 민족지에서 마을 주민들은 “모든 것은 순전히 추측에 불과하다”며 공식적인 위험 표지판에 반복적으로 회의를 표한다. 이는 국가에 대한 불신 뿐만 아니라 어떤 권위–지도, 보고서, 경고 표지판, 보도자료–도 안전한 땅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불신은 취약성과 마찬가지로, 적대 세력들 사이에서도 공유된다. 지뢰는 대부분 지도에 표시되지 않고 원위치에서 이동하기 때문에 양측 모두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서로를 향해 지뢰를 사용하면서도 때로는 서로에게 경고해주기도 했던 캄보디아와 태국 군인들처럼, 평화의 시기에 두 한국은 지뢰 제거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김(Kim 2016)이 한국 DMZ에 대한 민족지에서 보여주듯, 지뢰는 정치적인 적대감을 넘어 공유된 취약성의 조건을 만든다. 김은 라킨(Larkin 2013)이 “다른 물질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로 인프라스트럭처를 정의한 데서 착안하여, 지뢰를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압력과 타이밍에만 반응한다는 점에서 “불량 인프라스트럭처”라 명명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뢰는 화해가 아닌 공동의 노출을 통해 승자와 피해자, 적과 아군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다종적 신뢰

지뢰는 DMZ를 불균등한 위험의 공간으로 구조화한다. 이 공간에서 접근성, 안전, 취약성은 종과 정치적 주체에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다. 이 지형을 횡단하는 많은 동물들은 지뢰를 작동시키기에 너무 작거나 빨라서 지뢰를 건드리진 않지만, 사슴, 엘크, 멧돼지는 종종 희생되며 이 동물들의 부상과 죽음은 대부분 기록되지 않은 채 남는다. 동시에, 바로 그 지뢰는 인간의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동물들이 번성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DMZ는 치명적인 인프라스트럭처가 피난처와 폭력을 동시에 생산하는 역설적 생태계로 출현한다.
다른 곳에서, 지뢰는 다종적 협력을 일으킨다. 캄보디아에서 지뢰 탐지에는 폭발물의 냄새를 맡도록 훈련된 감비아 주머니쥐가 동원된다. 인간은 안전하게 디딜 수 없는 지뢰 사이를 가볍게 움직이며, 캥거루쥐는 지뢰를 제거하는 살아있는 감지기로 기능하며, 인간의 생과 사를 좌우하는 결정을 맡게 된다. 디엔젤로는 이를 “안무(chroeography)”라 부른다. 이는미리 설계 되어있으면서도 때로는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쥐와 지뢰 제거자 사이의 섬세한 춤이다. 하네스를 착용한 쥐는 지뢰밭을 가로지르고, TNT를 발견하면 두 번 긁는다. 지뢰 제거자는 이를 기록하고, 쥐의 먹이 보상과 연결하는 클리커를 누른다. 디엔젤로가 언급하듯, TNT 냄새는 “그[쥐]의 몸을 통해 행복감과 기쁨을 전달하며”, 지뢰 탐지가 위협이 아닌 보상으로 경험된다고 시사한다. 이곳에서의 훈련은, 통제의 일방적인 실행이 아니라 함께 되기의 실천이다. 이는 개들이 강제로가 아니라 훈련이 단서, 보상 그리고 책임을 공유하는 세계를 형성하기에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해러웨이(Haraway 2008)의 연구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 다종적 신뢰는 지뢰밭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디엔젤로가 주장했듯이, 쥐는 “지뢰-탐지 기술이 되기 위해 인간(뿐만 아니라 폭탄)(2024: 7)”을 필요로 한다. 그들의 존재 전체가 선택적 사육, 실험 그리고 돌봄을 통해 재조직된다. 여기서 신뢰는 동물의 생명, 인간의 전문성, 폭발물의 공동 생산을 통해 설계된다. 그리고 심지어 협력의 순간에도 신뢰는 여전히 불균등하다. 그것은 “위계는 인간과 쥐 사이의 관계성의 일부가 되는” 실용적인 전략으로 작동한다(133).

관계적인 신뢰를 향하여

캄보디아에서 어떻게 영성(spirituality)이 “모든 이를 가해자이자 피해자(DeAngelo 2024: 105)”로 만드는지 설명하면서, 디안젤로는 윤회에 대해 불교 승려와 나눈 대화를 전한다. 그가 묻기를, “당신이 이미 켜진 다른 촛불로 촛불을 킬려고 할 때 이것은 같은 불꽃인가? 이것이 윤회다” (106-107). 여기서 윤회는 본질의 지속이 아니라 관계적 과정이다. 두 불꽃은 동일하지도, 완전히 분리되어있지도 않다. 지속되는 것은 통일 없는 관계다.
이로부터 나는 데 라 카데나(de la Cadena 2010)의 플루리버스적(pluriversal) 정치를 떠올린다. 산, 대지-존재, 경관은 선주민 안데스 세계 안에서 은유가 아닌 실제 정치적 행위자로 간주된다. 이것은 근대 국가와의 토지권, 채굴, 개발을 둘러싼 분쟁을 초래했고, 협상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었다. 이 존재론적 긴장 속에서, 그녀는 어떤 현실들은 “하나 이상, 그러나 둘보다는 적은” 것으로 이해될 때 가장 잘 파악된다고 제안한다(347). 하나의 공유된 세계도, 완전히 분리된 통약 불가능한 세계도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구별되면서도 얽혀 있는 세계들이다. 바라드(Barad 2014)의 내부-작용(intra-action) 개념과도 비슷하게, 분석적으로 중요한 것은 세계가 관계에 앞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차이는 분리의 문제가 아니라 부분적인 연결의 문제다.

이 관계적 논리로 생각해보면, 어쩌면 한국도 하나보다는 많지만 둘보다는 적을지도 모른다. 남북한은 완전히 분리된 실체도 아니고, 단일한 연속적인 국가도 아니다. 두 불꽃처럼 그들은 공유된 역사적 불씨, 전쟁을 통해 공동 구성되었지만 그 여파 속에서 서로 다르게 출현하게 되었다. 지뢰는 이 조건을 물질적으로 사유하게 해준다. 불량 인프라스트럭처로서 지뢰는 정치적인 경계, 생태계 그리고 시간의 층위를 내부-작용하며, 두 한국을 공유된 취약성의 장소로 묶는다. 지뢰가 흩어져 있는 전쟁 이후의 생태계에서 신뢰는 확실성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대신 지뢰는 부분적인 연결 속에 거주하는 잠정적 실천—땅을, 국가를, 적을, 쥐를 신뢰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 연결이 고르지 않고, 취약하고, 불완전할지라도 말이다. 아마도 이런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종결을 거부하는 조건 속에서도 지속할 수 있는 법을 배우는 일일 것이다.

*이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논의를 나눠준, 니킬 아난드(Nikhil Anand) 교수님의 Advanced Readings in Environment and Society 수업에서 만난 멘토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참고문헌

Barad, Karen. 2007.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Quantum Physics and the Entanglement of Matter and Meaning. Duke University Press.
De La Cadena, Marisol. 2010. “INDIGENOUS COSMOPOLITICS IN THE ANDES: Conceptual Reflections beyond ‘Politics.’” Cultural Anthropology 25 (2): 334–70. https://doi.org/10.1111/j.1548-1360.2010.01061.x.
DeAngelo, Darcie. 2024. How to Love a Rat: Detecting Bombs in Postwar Cambodia. 1st ed. Atelier: Ethnographic Inquiry in the Twenty-First Century Series, v. 17.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Haraway, Donna Jeanne. 2008. When Species Meet. Posthumanities 3.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Henig, David. 2012. “Iron in the Soil: Living with Military Waste in Bosnia-Herzegovina.” Anthropology Today 28 (1): 21–23.
Kim, Eleana J. 2016. “Toward an Anthropology of Landmines: Rogue Infrastructure and Military Waste in the Korean DMZ.” Cultural Anthropology 31 (2): 162–87. https://doi.org/10.14506/ca31.2.02.
Larkin, Brian. 2013. “The Politics and Poetics of Infrastructure.”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 42: 327–43.
Stoler, Ann Laura. 2008. “IMPERIAL DEBRIS: Reflections on Ruins and Ruination.” Cultural Anthropology 23 (2): 191–219. https://doi.org/10.1111/j.1548-1360.2008.00007.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