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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와 차이
오늘은 기력이 부족해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잠시 누웠다 일어나 껍질을 등에 얹어 놓을 힘도 없는 민달팽이의 속도로 책장을 정리했다. 작년까지 내내 체력 하나만 믿고 살아왔는데, 소진되었다 느낀 이후 출력이 안되는 날들이 새삼스럽다. 새로운 자리에 책들 을 다시 꽂아 넣으며 지난 5년간 내가 거쳐온 생각의 흐름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단순한 이 과정이 엉켜있던 기억의 실타래를 다시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책장을 정리하며 분명히 읽었지만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책, 다시 펼쳐보지 않을 것이 분명한 책, 올해 안에 읽지 않을거라 판단한 책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게 따로 종이 상자에 담아 두었다. 어떤 책들은 한 번 읽고나면 잊히지 않는 것을 넘어 내 안 어딘가 깊숙이 자리를 잡고, 어느 순간 다시 꺼내보면 새로운 이야기가 더해져 있는 반면, 어떤 이야기는 두 번 세 번 읽어도 기억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런 차이가 그 사람 의 의도와 삶, 글쓰기의 일치에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상상력이 얼마나 더해 졌으며,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함께 작동시키는지 아닌지.
새로 구한 집은 바닥 난방이 없는 곳이라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 중고마켓에서 오방난로를 찾아 구입했다. 4월에 접어들어 목련도 벚꽃도 이미 피었다 졌는데도 밤이면 뚝 떨어지는 기온 덕분에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난로 위에 물을 담은 큰 냄비를 올려두고, 공기가 순환될 수 있도록 타워 팬을 함께 틀어놓았다. 잠시 집 앞에 나가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집안의 공기 전체가 포근해져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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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일기
2023년에는 내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한 계획을 내보인 것만으로 운 좋게, 또 특별한 이력 없이도 프랑스 국립도서센터에서 두 달치 월급과 항공권 비용을 내주는 번역가 지원을, 24년에는 베를린의 레지던시에서 행사 준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예술인 등록부터 어려웠던 한국 제도권의 지원금에 붙은 건 5년 만에 처음 일어난 일이다. 7개 월간 절반의 문제를 해결한 것만으로 벌써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드니, 스스로가 조금 우습다.
오래 끌어온 프로젝트의 마감을 이번 달 말일로 정해두고, 알바를 다녀왔다. 오늘 다녀온 일은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120석 규모 식당의 서빙일이다. 가장 바쁜 점심 때 3시간을 보조해주는 역할인데, 돈까스와 소바, 우동이 주 메뉴인 이 식당은 점심 때만 200인분이 넘게 팔린다. 그런데 주방에 4인, 홀에서 일하는 인원은 2명이 전부다. 대충 둘러 봐도 홀에 최소 3명은 있어야 쳐낼 수 있는 양의 일이 있다. 손님은 전자상가 내의 직원들이 대부분이고, 다음은 혼자 식사하러 온 사람들, 가족 단위 손님이 간혹 있다.
여성인 내가 음식을 서빙하며 움츠러 들지 않는 모습만 봐도 의아한 표정을 짓는 아저씨들이, 혼자 온 손님들은 눈치껏 가져다 먹는 반찬을 두 번 세 번 가져다 달라고 소리쳐 요청한다. 산이든 들이든 어디서든 마주친 셋 이상 모인 아저씨들은 서로가 서로의 위계만 쳐다 보기 바빠서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능력을 익히지 못한 것 같다. 집단이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일이 끝나갈 즈음 가부장제의 살아있는 화석 같은 영감님과 부인, 그들의 딸처럼 보이는 세사람이 조금 전 의아한 표정을 짓던 아저씨들이 떠나간 테이블에 앉는다. 서빙할 때 음식을 가장 어린 여성 앞에 먼저 놓고나서, 다음 음식이 곧바로 이어서 나올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 작은 변화 앞, 밥상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거나 양보한 적 없는 아저씨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영감님은 이미 빈정이 상해 화를 내기 직전이다.
저 나이를 먹도록 자라나는 아이들보다 자기 입에 음식을 먼저 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식사를 마치고 일어난 영감님이 입을 뗐다. 아가씨, 저기 창밖에 저기 효창공원이 보이지? - 나는 시선도 주지 않은채
무 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대답하고 자리를 뜨고, 영감님 옆에서 한 평생을 보냈을 여성이 특유의 미소를 짓는다. 나도 알아. 너도 좀 맞춰줘.
이날 혼자 식사하러 온 한 손님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는데, 몇 년 전 성추행 혐의로 주변에서 사라진 인물이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을지 알 수 없다. 그를 알아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했을까? 내가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지가 궁금했을까? 이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만큼 나에 대해 알고 있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피크 타임이 지나고 바깥을 내다보니 창문 너머로 내 방이 보였다. 내쪽에선 바깥이 선명하게 보여 밖에서는 이 안이 얼마나 보일까 궁금했는데 낮 동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안심했다. 아까 영감님이 가리킨 효창공원 쪽으로 시선을 돌려봤지만 새로 지어 올린 아파트만 보일 뿐. 일이 끝날 때 알바처에 다음주에 한 번 더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연락이 오면 시급을 올려 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세 사람의 일을 두 사람이 하고 있기도 하니 시급을 올리던지 사람을 한 명 더 써야겠다고.
잘릴 걱정 없이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단기 알바의 특권 아닐지.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식당의 내부가 훤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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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빵!이 되는
어제, 밤 10시가 넘어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대뜸 나에게 본인이 교회의 충실한 신자가 된 이야기를 담은 소책자를 만들어 달라는거다. 나는 짜증을 참지 않고 큰 소리를 내며 싸웠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흥분이 바로 가시지 않아 방금 본인이 한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는 문자를 보냈다. 성경에 염치라는 단어는 안나오더냐, 돌려받고 싶어서 내게 잘해 주는 거면 차라리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는.
에너지의 운용이 내 선택에 달려있다는 걸 어렵사리 배운 탓에 어지간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게 되었는데, 웬만하면 2-3년은 참아주고, 화를 내더라도 금세 진정시킬 수 있게 되었는데, 나를 자신의 당연한 자원으로 여기거나 물건처럼 다루는 말이나 태도에는 어김없이 화가 나는 것이다.
고작 소책자인데 비용이 얼마나 드냐는 아빠의 말을 뒤집어 놓고 독립 출판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작은 책자를 만드는 데 좀 회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 자신이 그것을 읽으며 크게 감동했던 적이 없어서 이를 통해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독립 출판은 자본에 따른 선택에서 자유롭고 저항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들 당연한듯 말하지만, 정말 그런가. 그런 효과를 발생시킨 적 있었나.
오히려 아이디어나 이미지를 패션처럼 소비하는 속도를 더 가속화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레이블이나 형식이 창작물의 내용을 보증하진 않는다.
독립 출판인지 아닌지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느낀 것, 꿈꾸는 미래를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도 전달할 수 있나 없나 하는 것 아닌가. 한 작가가 쓴 글을 읽는 이유가 전에는 본 적 없는 시선과 탁월한 글쓰기 때문이지 그 사람의 성별 때문이 아니듯. 결국 팔리는 범주에 안착하는 일과 궤를 달리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버스에 실려 온몸으로 기분 좋은 햇살을 받으며 연희동의 심두에 카레를 먹으러 가는 길에 노트북을 꺼내 일기로 쓰고 있다.
이즈음 연두빛 새순이 돋아난 나무들을 보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것이 이 나무들보다 나은 가치가 있기를 바라면서, 작년에 일년간 살았던 동네를 둘러보았다. 이전 집 건너편에 위치한 빵집 벤치에 앉아 작년의 감각들을 다시 모으고 있었다. 한 여자아이가 달려와서 빵이라고 적힌 낮은 철제 입간판을 주먹으로 때리니, 빵이라는 글자가 빵! 하고 무언가가 부딪히거나 터지는 소리로 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