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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
말씀의 집, 문화의 자리: 집들의 숲
series
최남주
필드노트
... 토라자 인도네시아

  1. 이하 원어 병기시 인도네시아어는 ‘I’로, 토라자어는 ‘T’로 표기한다. 

  2. 망라라 잔치는 해당 통코난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또 그 관습상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에 따라 이틀 혹은 삼일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거행된다. 통코난 룸바엣의 경우 비교적 낮은 등급의 ‘두 날 치르기’(T: diduang alloi) 망라라로 진행되었다. 

  3. 더 높은 등급의 ‘삼일 치르기’(T: ditallung alloi) 망라라에서 돼지는 레또안에 실린 채로 앞마당에 놓이고, 주요 의례를 모두 진행한 뒤 일제히 도축된다 

  4. 본명 얀리아누스 티란다(Yanrianus Tiranda). 퐁인탄은 종자명호칭(teknonym)이다.  

  5. Roxana Waterson, Paths and Rivers (Leiden: KITLV Press, 2020), 182. 

  6. ‘퐁피카’와 ‘퐁웅가’는 각각 넷렘방과 넷짬방의 종자명호칭이다.  

  7. Roxana Waterson, “The Immortality of the House in Tana Toraja,” in Stephen Sparkes and Signe Howell (eds.), The House in Southeast Asia: A Changing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Domain (Newyork: Routledge Curzon), pp. 34-52.  

  8. 토라자는 소위 ‘아닷’(I: adat, T: ada’), 관습의 차이에 따라 구분되는 수많은 영역(I: wilayah; T: tondok)으로 구분된다. ‘custom territory’는 내가 이를 영어로 표현하기 위해 ‘관세 영역’(customs territory)을 비틀어 만든 말이다. 

  9. 이하 모든 인명은 가명이며, 추가로 익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리(I: kelurahan, ward) 이하의 지명 역시 가명 처리한다. 

  10. 여기서 굳이 나의 경우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그 근본에 접붙은(grafted) 줄기라고 하겠다. 

  11. 토라자에서는 모거제(matrilocality)가 일반적이다. 

  12. Roxana Waterson, Paths and Rivers (Leiden: KITLV Press, 2020), 183. 

2023년 세밑, 성탄절을 지나 정말로 새해가 바투 가까워 왔다. 12월에 한국은 “추위의 계절”(겨울)1로 접어들지만, 토라자의 열대성 기후는 외려 “축제철”의 활기로 물씬 달아오른다. 만데텍 지방 산자락에 자리 잡은 ‘통코난 룸바엣’도 그렇게 뜨거웠다. 갓 완공된 이 가옥은 옛날 옛적 넷포까테(Ne’ Pokkate) 부부가 살았던 집터에 세워졌다. 이제 이 집은 그들 부부를 그리워하는 모든 자손의 집, ‘통코난'으로 선포되려 했다. 숱한 돼지의 피를 흘려 친족의 피의 표상으로 삼는 의례, 망라라(T: mangrara)를 치름으로써 말이다.

12월 28일 아침, 나는 넷포까테의 자손인 탐벤 교회 담임목사의 초대를 받아 통코난 룸바엣으로 향했다. 이날은 이틀간2 치러진 망라라 잔치의 둘째날이자 “절정”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례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통코난 앞마당에는 도축되고 해체된 돼지의 시체가 즐비하여 시큰한 핏내를 풍겼다3. 임박한 의례를 준비하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앞마당을 둘러싸고 이곳 저곳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나도 목사의 안내를 받아 의례를 잘 내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의례연설가 퐁인탄4이 돼지 살덩이의 복판으로 나와 통코난 처마를 등지고 섰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의례의 시작을 알리는 모두 연설 맛파라팟(T: ma’parapa’)을 읊는다.

태양이여, 달이여, 별들 그득한 창궁이여
...
나 이제 자제들[의 말]을 나르고 선조의 말을 옮기리라
...
[내 입술은] 대나무 군락[과 같은] 무리의 입술과 이어지고
죽림[처럼 우거진] 온 겨레[의 입]과 닿아 있도다

“대나무 군락[과 같은] 무리”와 “죽림[처럼 우거진] 겨레”는 대구를 이루어 망라라를 주최한 친족 집단을 가리킨다. ‘탈랑’(T: tallang)이라는 대나무 종은 동일한 근본을 공유하는 여러 줄기의 군락, ‘라푸’(T: rapu; 무리, 군락)의 형태로 서식한다. 마찬가지로 ‘토 맛라푸 탈랑’(T: to ma’rapu tallang; 대나무 군락 [같은] 사람들), 즉 사람의 군락은 ‘조상=근본’을 같이하는 ‘자손=줄기’의 집단이다5. 의례연설가는 결코 자기의 “입술,” 자기의 “입”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대나무 군락”처럼 우거진 친족의 입술에 제 입술을 이어, 아래로는 “자제들의 말을 나르고” 위로는 “선조의 말을 옮”긴다. 그는 ‘라푸’의 대변자, ‘라푸’의 대리자이다.

나직하게 읊조리던 퐁인탄의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더니, 마치도 숲처럼 울창해져 좌중을 휘감았다. 이제 그는 “하늘 중앙”부터 “땅끝”까지, 또 지체 높은 귀족부터 잔칫밥을 얻어먹으러 온 뜨내기까지, 통코난 룸바엣을 둘러싼 모든 존재에게 인사를 건넨다.

하늘 중앙에 문안하노라, [만물을] 굽어살피시는 대감께 인사하노라
...
워허이- 남녘의 황금빛 땅끝에 문안하노라
광막한 대지에 인사하노라
...
큰 사람 작은 사람 모두에게 인사하노라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모두에게 문안하노라
중간 가지와 우듬지 모두에게 인사하노라
거목이든 어린 나무든
여러분 중 누구도 벽 밖에 두지 않고, 집 밖에 두지 않으니

이 긴 인사의 말이 시작되자 퐁인탄이 대리하는 “대나무 군락”이 통코난 처마밑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희와 악사의 전통의상을 입은 교회 청년부 아이들, 법의(法衣)를 두른 목사 일행의 뒤를 따라 넷폭까테의 자손 일동이 행진해 들어왔다. 퐁인탄이 ‘라푸’를 대변하여 쩌렁쩌렁한 인사의 말을 읊는 동안 그들도 통코난 앞마당을 가로지르며 좌중에게 묵언의 인사를 건넸다. “큰 사람 작은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누구든 빼놓지 않고, 다시 말해 “벽 밖에 두지 않고, 집 밖에 두지 않”고 모두에게 말이다. 넷포까테의 자손이 대나무 군락을 닮았듯, 망라라 잔치에 모인 이들은 “거목”과 “어린나무”가 뒤섞인 삼림을 닮았다. 이 다종의 숲이 통코난 룸바엣 앞마당에, 활기로 부풀어 커다래진 통코난 안에 모인 것이다.

라푸의 행진이 끝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긴 인사의 말도 끝이 났다. 퐁인탄은 돼지 살덩이들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가더니, 이번에는 통코난을 마주보고 연설을 이어갔다. 연설은 ‘삼팟 바누아‘(T: sampa’ banua), 직역하여 ’집을 풀어내는‘ 대목으로 접어든다. 이제 퐁인탄은 통코난 건립의 내력을 비롯한 ‘집’의 이야기를 구술한다. 그는 우선 만데텍 지방의 역사를 요약하고,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워허이─
참으로 총명하다 넷포까테, 슬기롭다 툼밧 말라아(Tumba’ Malaa)
참으로 총명하다 마투툿(Matutu’), 슬기롭다 네넷탐발롱(Nene’ Tambalong)
두루 복된 땅, 너른 바위와 같은 땅을 알아
집을 지었도다, [기둥]을 박아 보금자리를 세웠도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니
포까테와 툼밧 말라아가 지은 돌[처럼 단단한] 지붕이 삭고
마투툿과 탐발롱이 세운 튼튼한 우물도 삭았더라

넷포까테와 툼밧 말라아 부부는 “두루 복된 땅, 너른 바위와 같은 땅,” 즉 만데텍에 터를 잡고 집을 짓는다. 그들은 이 집에서 자식 마투툿, 사위 네넷탐발롱과 함께 가정을 일군다. 그러나 이 집은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며 “지붕이 삭고” “튼튼한 우물도 삭았”다. 이렇게 스러져가는 조상의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운 자손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통코난 룸바엣 건립의 주도자인 넷렘방과 넷짬방이다.

참으로 총명하다 퐁피카, 슬기롭다 넷렘방
참으로 총명하다 퐁웅가6, 슬기롭다 넷짬방
수탉의 울음을 내는 총명함과, 투계(鬪鷄)의 기세로 묻는 슬기로
대나무 군락[과 같은] 무리, 죽림[처럼 번성한] 온 겨레에게
통코난 룸바엣의 자제들에게 [말하길]
...
“여기 집을 탄탄히 해서 긴 처마를 올리세”

주목할 것은 통코난 룸바엣의 건립이 새로운 집의 건축으로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리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통코난은 분명 완전히 새로 지은 건물이다. 넷렘방 세대로부터 8대 위, 까마득한 조상인 넷포까테 부부의 집이 원래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을 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퐁인탄은 넷렘방과 넷짬방의 입을 빌려 말하길 “집을 탄탄히 해서” “긴 처마를 올리”자고 한다. 원래부터 버젓이 있던 집에 무언가를 더할 뿐인 듯 말이다.

워터슨은 토라자의 집이 “불멸성”을 띤다고 했다7. 과연 위 대목에서 퐁인탄은 넷포까테가 지었던 집이 오랜 세월 존속하다가 마침내 “긴 처마”를 올린 통코난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대나무 군락”처럼 번성한 자손의 “총명함”과 “슬기”에 힘입어 말이다. 먼 옛날 이 집은 토라자의 집들이 무릇 그러하듯 사람의 이름으로 불리는 집, ‘넷포까테’였을 테다. 이제 이 ‘넷포까테’에 새로운 이름 ‘통코난 룸바엣’이 더해진다. 집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긴 처마”와 함께 획득한 통코난이라는 지위, 그리고 ‘통코난 룸바엣’이라는 이름이 새로운 것이다.

‘넷포까테’라는 집은 어떻게 지금까지 “불멸”할 수 있는 것일까? 물리적으로는 완전히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속한다고 여겨지는 것은 어째서인가? 시간을 앞으로 돌려 퐁인탄이 만데텍 지방의 역사를 구술하는 대목을 보자.

워허이-
참으로 총명하다 푸앙 람부랑잇
슬기롭다 데아타(만데텍의 별칭)의 거목 아링
[푸앙 람부랑잇은] 총명함으로 거목을 심고, 슬기로 향나무를 길러 사방으로 키웠네
가지는 온 주위로 뻗고 뿌리는 호수를 건너
이 향토의 중앙, 고을 몸체에 이르렀으니
워허이-
복된 땅, 너른 바위처럼 온전한 만데텍 땅은
예법을 간수한 조상, [법도를] 실패에 감은 선조가 구획한 땅이어라

만데텍이라는 ‘관습 영역8’의 성립에 얽힌 전설적 역사가 압축적으로, 또한 시적으로 구술된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풀면 다음과 같다. 우선 옛날 옛적 푸앙 람부랑잇이라는 조상신이 있었다. ‘푸앙’의 칭호를 지닌 토라자 조상신이 대개 그렇듯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이다. 푸앙 람부랑잇은 만데텍 인근의 산으로 내려와 “거목”을 심는다. 토라자 의례언어 곳곳에 등장하는 “거목”은 나무이면서 사람(들)이고, 또 집이다. 거목을 심었다 함은 푸앙 람부랑잇 스스로가 지상에 터를 잡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집에 살면서 자손을 널리 퍼뜨린다. 그렇게 위로는 가지와 잎을, 아래로는 뿌리를 너르게 뻗은 나무, “거목”으로 성장한다. 이 커다란 나무에서 뻗어나온 가지 중 가장 위대한 자가 만데텍 지방의 시조 아링이다. 그는 “예법을 간수한 조상, [법도]를 실패에 감은 선조”가 되어 관습 영역 만데텍을 “구획”했다.

이것은 사람, 식물, 집이 서로를 나타내는 표상의 숲이 쓰는 역사이다. 사람은 땅에 뿌리를 박고 나무처럼 선다. 같은 땅 위에 나무가 심기듯 집이 지어진다. 앞서 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집과 집의 관계라고 썼다. 친족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친족의 계보가 이어지려면 부모가 집을 짓듯 자식도 집을 짓고, 조상이 집을 지었듯 자손도 집을 지어야 한다. 사람은 사람을 낳고, 집은 집을 낳고, 나무에서 가지가 뻗으며 친족의 역사가 자라난다. 만데텍의 시조 아링에서 넷포까테로, 넷포까테에서 넷렘방으로 이어지는 계보도 그렇다. 계보이자 역사인 이 이야기 속에서, 넷포까테가 죽고 ‘넷포까테’라는 집의 형체도 스러지지지만 그의 집은 자손의 삶과 함께 영속한다.

퐁인탄이 대변하는 ‘통코난 룸바엣’의 친족은 그런 역사를 통해 성장해온 거목이다. 이 거목은 앞서의 연설에서 보았듯 또한 “대나무 군락”(라푸)이다. 가지가 울창히 뻗은 거목은 친족을 나타냄과 동시에 근본을 공유하며 뻗어나오는 대나무 줄기들의 이미지와 호환된다. 이러한 대나무 군락의 형상은 통코난 규모의 친족뿐 아니라 더 작은 가족의 단위에서도 나타난다.

파닛9 마을에 있는 ‘우리’ 집, ‘마마줄리’도 그렇다. 이 집은 마마줄리와 파파줄리라는 근본과, 이 근본을 함께하는 줄기들, 즉 세 딸이 함께 사는 집이다10. 지금 이 중 첫째 줄기인 줄리가 새로운 집으로 자라나오려 한다. 결혼한 후 마마줄리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줄리 부부11는 아들 레이를 나은 후 그들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들 역시 집처럼 지어진다. 이제 그들은 ‘줄리’와 ‘로날’이라는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아들의 이름을 딴 ‘마마레이’와 ‘파파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훗날 완공될 마마레이 부부의 집 역시 ‘마마레이’ 혹은 ‘파파레이’로 불릴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집의 이름이 되고, 그렇게 그들은 다른 집들과 교제하는 ‘한 집’이 되어간다.

토라자에서 사람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어야 어엿한 ‘사람,’ 어른이 된다. 이는 집을 지어 집과 같은 사람이 되는 일과 같다. 가정 일구기와 집 짓기는 ‘운타난 다폿’(T: untanan dapo’)이라는 말로 함께 일컬어진다. ‘다폿’(T: dapo’)은 부엌을, ‘운타난’’(T: untanan)은 심는 행위, 이 경우 마치 나무를 심듯 부엌의 화로를 심는 행위를 일컫는다. 가정을 일구는 일은 가족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공간, 즉 부엌을 중심으로 집을 짓는 일과 같다. 자식은 자신의 집을, 또 가정을 ‘지으며’ 부모의 집으로부터 자라나온다. 그러나 자식이 자라나와도 부모와 자식이 맺는 근본과 줄기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 댓줄기는 아무리 멀리 뻗어도 땅에 붙박은 근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부모의 집 역시 자식의 근본으로서 언제나 그리운 집, 계속해서 돌아가야 할 집이다. ‘마마줄리’로부터 ‘마마레이’가 자라나오더라도 ‘마마줄리’는 자식인 마마레이에게, 또 손주인 레이에게도 집일 테다. 그렇게 조금씩, ‘마마줄리’는 자손이 그리워하는 조상의 집이 되어간다. 바라건대는, 통코난이 되어간다.

마마레이가 집이 되어가고 있듯, 마마줄리의 다른 두 딸 이챠와 셀리도 언젠가 결혼하여 집을 지으리라 여겨진다. 하여 그들 역시 잠재적으로 각각 ‘한 집’이다. 하여 모든 집은 그 자체로 여러 ‘한 집’이 모인 집들의 군락, 집들의 숲이다. 이 숲은 그 근본이, 근본이 붙박고 선 땅이 기억되는 한 불멸이다. 근본을 그리워하는 줄기들이 있는 한 불멸이다. 이 숲은 유구히 불멸하면서 커다란 대나무 군락, ‘라푸‘로 자라나 통코난이 되고자 한다.

2023년 12월 28일, ‘통코난 룸바엣’이 그랬듯 말이다. 이날 통코난 앞마당에 모인 “대나무 군락[과 같은] 무리,” “죽림[처럼 번성한] 온 겨레”는 모두 각자의 집을 가진, 혹은 어느 정도씩 집인 사람들이었다. 집들이었다. 통코난은 집들의 숲이 획득하는 영광스러운 지위이고 사람과 식물, 집이 서로를 나타내며 빚어내는 생애사12의 한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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